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 물건을 웬만하면
아주 오래 쓰는 편이며 아껴 쓰는 걸 정말 좋아합
니다. 그러던 중 10년 넘게 쓰고 있는 키보드가
자판 안이 너무 더러울 거 같아서 청소를 해볼까
생각했죠. 물론 키스킨 따윈 쓰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겉으로도 조금 더러운 느낌이 있었지만 자판을
다 뜯어내고 나서 엄청 놀랐습니다.




와 진짜 깜짝 놀랐는데요. 키스킨을 안 씌우고
10년 넘게 썼더니 이지경이 돼있더라고요.
흉가 저리 가라인데요. 어쨌든 너무 더러우니까
청소를 했습니다. 이쑤시개로 긁고 물티슈로
닦고 면봉으로 쑤시고 진짜 별에 별짓을 다해서
청소한 거 같네요. 뿌듯하게 청소 끝!!!!


와아~ 이 깨끗한 기분 스멜 흐아~~
헌데 청소를 하고 자판들을 다시 다 꼽아보는데
한 칸으로 돼있는 거는 제대로 작동을 하는데
키를 벗겨낸 자판 위에 보면 직사각형의 철사가
있는 부분 즉, 엔터 버튼이나 쉬프트버튼처럼
두 칸 이상 돼있는 거는 자판 밑부분이 부러져서
버튼 중에 한두 부분이 덜렁거리면서 키가 잘
안 눌러지는 게 아니겠습니까ㅠㅠㅠㅠㅠㅠㅠ
아 개고생 해서 닦아놨더니 이걸 몰랐더군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키보드는
사망했고 새 키보드를 구매하여 사용 중인데
딴 건 다 괜찮은데 딱 하나가 엄청 불편했습니다.

위 사진 중간쯤에 컴퓨터에 연결하는 단자가
보이죠? PS/2(피에스 투) 포트 라고 하는데
이걸로 컴퓨터에 연결하면 의자 밑에 보통
있는 데스크톱 전원버튼을 안 누르고 키보드의
아무 버튼이나 누르면 컴퓨터의 전원이 켜집니다.
이게 별거 아니지만 정말 유용했었고 기분도
좋았거든요. 하지만 다신 쓸 수 없으니 엄청
아쉽네요. 키보드 교체글은 여기까지이며
이왕 얘기 나온 피에스 투 포트에 대해
좀 더 알아볼까요?
보라색 단자의 추억에서 USB 키보드의 시대로
연결 방식의 변천사를 알아볼게요.
요즘 출시되는 화려한 커스텀 키보드나 게이밍
키보드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세련된 직조 케이블 끝에 달린 USB 단자를
컴퓨터에 툭 꽂기만 하면 즉시 무지갯빛 조명이
들어오며 작동하는 모습은 이제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었죠. 하지만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책상 위 풍경은 사뭇 달랐습니다.
본체 뒷면의 보라색 구멍을 찾아 핀이 부러질까
노심초사하며 정성스럽게 키보드를 연결하던
"PS/2"의 시대가 분명히 존재했으니까요.
제가 기억하는 PS/2 방식은 참으로 고집스럽고도
충직한 규격이었습니다. 1987년 IBM에 도입된
이 방식은 오직 키보드와 마우스라는 입력 장치만을
위해 설계된 전용 통로였습니다. 당시 컴퓨터 좀
만진다는 사람들에게 PS/2는 단순한 연결 단자
이상의 의미가 있었죠. 바로 '인터럽트(Interrupt)'
방식 때문입니다. 키보드를 누르는 순간
CPU에 직접 신호를 보내 다른 모든 작업을
제치고 최우선으로 처리하게 만드는 이 방식은
이론적으로 입력 지연(Input Lag)이 0에 가깝
다는 자부심을 주었습니다. 덕분에 무한 동시
입력이 필수인 하드코어 게이머들이나 빠른
타이핑을 즐기는 이들에게 PS/2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성역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고집
만큼이나 불편함도 상당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핫 스와핑(Hot Swapping)'의 부재
였습니다. 컴퓨터가 켜져 있는 동안 실수로
키보드 선이 빠지기라도 하면 그날은 운이
나쁜 날이었습니다. 다시 꽂는다고 인식이
되는 게 아니었거든요. 애써 작성하던 문서를
저장하지도 못한 채, 본체의 리셋 버튼을 눌러
재부팅을 해야만 키보드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게다가 원형 단자 안의 6개 핀은 어찌나 약한지
본체 뒷면 어두운 곳에서 감으로 끼우다가 조금만
힘을 잘못 주면 핀이 휘거나 부러지기 일쑤였습니다.
핀이 휘어버린 단자를 핀셋으로 조심스레 펴던
기억은 그 시절 사용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본 통과의례였죠. 그러다 2000년대 들어
USB(Universal Serial Bus)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USB 키보드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미온적이었습니다.
"범용 포트인 USB는 폴링(Polling) 방식이라
CPU가 주기적으로 신호를 체크해야 하니 반응
속도가 느리다", "동시 입력에 한계가 있다"는
등의 기술적 비판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편리함
이라는 무기는 그 모든 비판을 잠재우기에
충분했습니다. 컴퓨터가 켜진 상태에서 언제든
꽂았다 뽑을 수 있는 '플러그 앤 플레이' 기능은
혁명이었습니다. 더 이상 키보드 하나 바꾸려고
윈도우를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또한 USB 규격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단점으로
지적되던 폴링 레이트(반응 속도 주기)가 비약적
으로 상승했고, 소프트에어 기술을 통해 USB
에서도 무한 동시 입력이 가능해지면서 PS/2의
기술적 우위는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결정적으로 메인보드의 설계 효율성이 세대교체를
가속화했습니다. 키보드와 마우스용 포트를 따로
두는 것보다, 여러 장치를 연결할 수 있는 USB
포트를 여러 개 배치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조사들은 점차 보라색과 초록색
포트를 하나로 합친 '콤보 포트'를 내놓더니
급기야는 아예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USB-A를 넘어 더 작고 빠른
USB-C 타입으로 연결되는 키보드를 사용합니다.
핀이 휠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재부팅의 번거로움
도 없는 이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죠. 하지만
가끔은 그 뻑뻑한 보라색 단자를 조심스레 밀어
넣을 때 느껴지던 물리적인 연결감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기술은 더 편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변해왔지만, 그 변화의 과정 속에는 컴퓨터와
씨름하며 성장했던 우리들의 서툰 추억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끝.
-디테 D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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